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영풍과 MBK파트너스 공개매수에 대응하는 전략이 가시화되고 있다. 법원이 자사주 매입 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함에 따라, 고려아연은 곧바로 자사주를 매입하며 경영권 방어에 나설 계획이다.
2일 법조계 및 업계에 따르면 영풍이 고려아연을 상대로 제기한 자기주식 취득 금지 가처분 소송이 기각됐다. 앞서 영풍은 공개매수 기간 고려아연이 자사주를 취득할 수 없도록 해 달라고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으나,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이로써 고려아연은 공개매수 종료일인 4일에 자사주 공개매수 개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고려아연은 영풍과 MBK파트너스가 제시한 공개매수 가격인 75만원을 웃도는 80만원대에서 자사주 매입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고려아연은 이날 오전 예정된 이사회에서 자사주 공개매수 관련 구체적인 내용을 확정할 계획이다. 고려아연은 이번 자사주 매입을 위해 기업어음(CP) 발행으로 마련한 4000억원을 포함해 총 2조원이 넘는 유동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우에 따라서는 글로벌 사모펀드(PEF) 베인캐피탈과 협력해 공개매수를 진행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고려아연은 가처분 소송 결과와 상관없이 자사주 매입을 통해 경영권을 방어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가처분 결과 발표 이전에 이미 이사회를 소집해 경영권 방어를 위한 전략을 구체화했다. 이사회를 미리 소집한 배경에는 영풍·MBK측의 공개매수에 대응해 주주들이 이에 응하지 않도록 견제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려아연은 취득한 자사주를 전량 소각하겠다는 승부수를 띄웠다. 이번 자사주 취득이 우호기업과 자사주 교환을 통한 의결권 지분 확보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소각을 통해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쓰겠다는 것이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이를 우호 세력에 매각할 경우 의결권이 생겨 우호 지분을 확대할 수 있다. 특정 기업과의 주식 교환을 통한 경영권 방어 목적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MBK측은 고려아연의 고가 자사주 매입이 배임 여지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공개매수 기간에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발표하는 것이 시세조종 의혹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제기된다. MBK측은 "자신의 경영권을 지키자고 조단위에 달하는 회삿돈을 쓰겠다는 발상 자체가 심각한 배임 행위"라며 "이러한 무리수를 강행하는 경우, 자기주식 취득 금지에 관한 추가적인 가처분 등 필요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고려아연은 영풍정밀에 대한 공개매수에 나서는 경영권 방어 투트랙 전략을 선택했다. 최창규 영풍정밀 회장과 최창영 고려아연 명예회장, 최윤범 회장이 출자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 제리코파트너스는 이날부터 21일까지 주당 3만원에 영풍정밀 주식을 공개매수한다. 이는 MBK가 내세운 주당 2만5000원보다 20% 높은 가격이다. 공개매수로 최대 25%(393만7500주)를 확보하면 최 회장측 지분율은 기존 35.31%에서 60.3%까지 확대된다. 영풍정밀은 고려아연 지분을 1.85%를 보유하고 있어 향후 지분 싸움에서 캐스팅 보트로 떠오를 수 있다.
이성민 기자 [email protecte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