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제일제당공업주식회사로 출발한 CJ제일제당은 설탕과 밀가루 등을 만드는 종합식품회사로 시작해 식품·생명공학·유통·엔터테인먼트 등 4대 사업을 아우르는 CJ그룹의 모태 기업이다. 이병철 선대회장의 창업 이념을 발판으로 회사가 70여년간 회사가 지향해온 경영 철학은 '인재제일(人才第一)'이다. 공정한 인사, 성과에 기반한 확실한 보상을 원칙으로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여러 제도를 도입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시도한 공개채용(공채)이다. 연고에 의존한 채용이 보편적이던 1957년, 학연과 지연을 보지 않고 실력 있는 인재를 뽑겠다는 취지로 제일제당과 모직·무역 부문에서 신입사원 공채를 시행했다. 지원자 2000여명이 몰려 성황을 이룬 가운데 필기(영어·논문·상식)와 면접전형을 거쳐 합격자 27명을 선발했다. 3개월간 설탕 부대를 나르는 일부터 사업장의 다양한 업무를 익히는 현장 실습도 병행했다. 이는 다수 기업의 채용 모델로 굳어졌다.
민간 기업 최초로 승진에 대한 기준을 마련한 곳도 제일제당이다. 1966년 준사원에 해당하는 4급 사원에 대한 승격과 승진 규정을 제정했다. 1960년대 식품업계에서 관행으로 여겨지던 12시간 2조 2교대 제도도 처음으로 8시간 3조 3교대로 바꿨다.
제일제당 산하 10개 기업이 1997년 삼성그룹으로부터 독립해 CJ그룹으로 새 출발한 뒤에도 실험은 계속됐다. 젊고 미래 지향적인 조직 문화를 구축하자는 취지로 1999년 국내 대기업 중 처음으로 복장 자율화를 시도했고, 이듬해에는 국내 최초로 모든 직원의 직급 대신 이름 뒤에 '님'을 붙여 부르도록 호칭을 바꿨다.
이 밖에 2012년 그룹 전체에서 입사 후 10년 만에 임원이 될 수 있는 '패스트 트랙(Fast Track)' 제도를 도입했고 2022년부터는 사장, 총괄부사장, 부사장, 부사장대우, 상무, 상무대우로 나뉘어 있던 6개 임원 직급을 '경영리더' 단일 직급으로 통합했다. 기존 대기업 가운데 사장급 이하 임원들을 단일 직급으로 운용한 것도 CJ가 처음이었다.
앞서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역량과 의지만 있다면 나이와 연차, 직급에 관계없이 누구나 리더가 될 수 있고 특히 새로운 세대들이 틀을 깨고 새로운 도전을 마음껏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반영해 성과를 내고 업무 범위가 넓을수록 더 많은 보상을 받고, 연공서열에 상관없이 부문장이나 최고경영자(CEO) 등 주요 보직에 오를 수 있도록 인사 시스템을 바꾼 것이다.
실제로 제도 시행 이후 관리자급에서 젊은 직원과 여성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CJ제일제당에 따르면 2021년 기준 3명이던 국내 법인의 30세 미만 간부 수는 지난해 10명으로 늘었고, 30~50세 간부 수도 2460명에서 2823명으로 상승했다. 관리자 역할을 수행하는 관리직 중 여성의 비율도 같은 기간 17.1%에서 21.4%로 올라갔다. 경영리더에 3040을 발탁하는 사례도 꾸준히 나온다.
다만 CJ제일제당에 여성 CEO 자리는 전인미답이다. 그룹사 전체로 범위를 넓혀도 2009년 최초 타이틀은 단 김정아 전 CJ엔터테인먼트 대표와 2022년 그룹 내 최연소 여성 CEO로 이름을 올린 이선정 CJ올리브영 대표 등 손에 꼽을 정도다. 업계 관계자는 "오너가(家) 일부를 제외하면 식품 대기업에서 CEO로 여성을 발탁한 사례가 매우 드물다"면서도 "식품업계가 갈수록 트렌드에 민감해지고, 다른 산업과 협업도 활발해진 만큼 두각을 나타내는 젊은 리더를 중용하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흥순 기자 [email protecte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