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을 포함한 기업 밸류업(기업가치 상승) 규제 법안을 도입하면 반도체 등 첨단 산업 기업 투자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소액주주, 행동주의 펀드 등이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 문제 삼으면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이사들이 회사 미래를 위한 대규모 장기 투자 의사 결정 등을 주저하게 될 것입니다. "
정철 한국경제인협회 연구총괄대표 겸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최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디지털 전환, 그린 전환 등 한국경제가 변곡점에 서 있는 시대라 과감한 투자가 가장 중요한 만큼 기업 투자 결정을 위축시키는 규제는 개선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 대표는 밸류업 관련 규제 때문에 반도체 기업 등이 투자 타이밍을 놓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개정안 도입에 반대했다. 그는 법 도입 시 당장 성과를 내기 어려운 장기 투자 같은 의사 결정에서 기권하는 이사회 멤버가 늘 것으로 봤다. 나아가 기업 사외이사를 하려 하는 이들이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소액주주, 행동주의펀드를 포함한 모든 주주의 이해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을 경우 법적 책임을 묻는다고 하면 이를 감수하고 이사직을 수행하는 사례는 드물 것"이라며 "중요한 결정을 추진하지 않고 기권하거나 결정을 미루는 이사가 늘면서 기업이 투자 적기를 놓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도체 보조금 지원 정책은 반드시 시행해야 한다고 했다. 국회 법, 정부 시행령·시행세칙 개편을 총동원해야 한다고도 했다. 재정건전성이 중요하지만 한 번 뒤처지면 다시는 따라잡기 어려운 '반도체 전쟁' 중인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정 대표는 "반도체 기업들은 2000년대 후반 치킨게임 기간 포함해 어떤 불황이 와도 정부에 보조금을 달라고 한 적이 없지만 지금은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며 "한국은 미국, 중국, 일본보다 리소스(자원)가 적고 해외 의존도는 높은 만큼 보조금, 감세(세율 인하) 정책을 좀 더 전략적으로 펼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경연은 지난 6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0%에서 2.4%로 0.4%포인트 올렸다. 상반기 미국 경제 회복세가 뚜렷해 글로벌 경기가 개선되면서 한국 수출도 호전됐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성장률 전망치 조정 가능성도 시사했다. 한경연은 오는 12월 올해와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발표하는데, 최근 메모리 반도체 제품 단가가 하락하는 등 반도체 기업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변수가 생겼다고 판단한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제품 9월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1.7달러로 전월 대비 17.07% 하락했다.
정 대표는 "미국 대선, 중동 정세 등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소가 워낙 많은 만큼 향후 두 달간 세계 경기 위축 가능성, 반도체 시황 등을 면밀히 고려할 것"이라면서 "이를 반영하면 전망치를 낮출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문채석 기자 [email protecte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