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도체 기업들의 ‘D램’ 기술이 최근 중국으로 집중적으로 유출되는 ‘타깃’이 되고 있어 업계에선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5일 법조계와 업계에 따르면 수사당국이 근년 간 중국으로 유출된 것으로 적발하면서 확인된 우리 반도체 기술은 전부 D램에 집중됐다. 지난달 27일 서울중앙지검 정보기술범죄수사부(부장검사 안동건)가 산업기술보호법,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한 청두가오전(중국) 대표 최모(66)씨와 개발실장 오모(60)씨가 2020년 9월께 중국에 넘긴 것도 D램 공정기술이었다. 해당 기술은 삼성전자가 4조원을 투입해 개발했다. 유출된 기술을 바탕으로 청두가오전은 중국에서 두 번째로 D램 시범 웨이퍼를 생산하고 20㎚(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을 기반으로 한 D램을 개발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보다 앞선 2016년과 2018년 중국으로 유출된 기술도 차세대 D램을 만들고 성능을 향상시키는 것들이었다.
우리 D램 기술엔 항상 유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D램은 낸드플래시와 함께 메모리 반도체의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반도체 산업을 강화하기 위해선 D램 기술의 향상은 반드시 이뤄야 하는 과업이다. 인공지능(AI)의 부흥으로 D램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D램으로부터 파생되는 제품들도 급부상하고 있다. D램을 쌓아 올리는 고대역폭메모리(HBM)가 대표적이다. 중국이 최근 D램은 물론, HBM 개발을 자력으로 해내기 위해 고삐를 당기면서 우리 D램 기술 사수는 더욱 중요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의 D램 기술은 우리나라와 5년의 격차가 나는 것으로 업계와 전문가들은 추산한다. 2022년 5월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가 중국의 D램 제조기업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당시 10나노 2세대 D램을 양산하려 하는 상황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다음 해 10나노 5세대 D램을 양산하려 하는 상황을 비교했다. 한 세대당 기술 격차는 통상 2년에서 2년6개월 사이임을 감안해 양국의 기술격차가 5년 이상인 것으로 봤다. 이때 분석된 격차는 2년이 흐른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중국이 격차를 단기간에 줄이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인재 영입이다.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사실상 후발주자나 다름없는 중국으로선 노하우와 인프라가 전무하다. 이런 가운데 자본력을 앞세워 좋은 인재들을 영입해 그들이 가진 기술을 자국 인재들에게 심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우리 기업들에서 자리를 잃어가는 60대 이상 이른바 ‘시니어 인재’들이 영입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이들 대부분은 각 기업에서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거나 삭감된 연봉으로 근무하면서 다른 선택지를 기다리던 중 중국의 러브콜을 받고 움직이고 있다. 이들은 우리 기업에서 20~30년 일하며 D램 기술을 갈고 닦은 전문가들로 전해진다. 지난달 검찰이 구속기소한 최씨와 오씨도 각각 60대, 50대에 중국 땅을 밟았다.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SK하이닉스는 2018년부터 60세 정년을 넘긴 뒤에도 일할 수 있는 ‘기술 전문가’ 제도를, 삼성전자는 2022년부터 우수 인력에 대해선 정년을 두지 않는 ‘시니어 트랙’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거액의 연봉을 앞세운 중국의 제안을 시니어 인재들이 뿌리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운 실정이다.
유출자는 단죄할 수 있지만 유출된 기술은 주워 담을 수 없다. 중국 기업들을 돌고 있는 우리 D램 기술들은 최근 중국 D램 성장의 발판이 되는 분위기다. 특히 중국 대표 반도체 기업으로 떠오른 CXMT의 추격이 매섭다. 2016년 삼성전자 부장 출신 김모씨가 삼성전자의 18나노 D램 반도체 공정 정보를 무단으로 유출한 그 회사다.
CXMT는 최근 높아진 D램 기술력을 앞세워 HBM 개발까지 넘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매체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CXMT는 HBM 생산에 필요한 장비들을 구매하기 위해 미국과 일본 업체들과 접촉하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등 방식을 가리지 않고 우리 반도체 기술자들을 영입하기 위해 나선 것으로도 알려졌다. CXMT는 현재 18.5나노 D램 공정이 가능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0나노를 바라보고 있는 우리 기업들에 비해선 크게 뒤처지지만 불과 2년 만에 이뤄낸 성과여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빠르게 향상된 기술을 바탕으로 지난해에는 LPDDR5(저전력 D램)도 개발해냈다. 다만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이 CXMT를 미국의 기술에 접근하지 못하게 제한하는 소위 ‘블랙 리스트(entity list)’에 올리는 것을 검토하고 있는 점은 추격의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따라가는 와중에 세계 D램 시장 ‘빅3’의 경쟁은 계속되고 있다. 현재까지도 중국이 따라가기 버거울 만큼 D램 혁신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미국)에 의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8월 세계 최초로 10나노급 6세대 1c 미세공정을 적용한 16기가비트(GB) DDR5 D램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10나노급 D램 공정의 세대는 1x, 1y, 1z, 1a, 1b, 1c 순으로 이어지는데, 세대를 거듭할수록 보다 미세한 공정이 적용돼 성능과 전력 효율이 높아진다. SK하이닉스는 1c 기술을 차세대 HBM과 LPDDR6, GDDR7(그래픽 D램) 등 D램 주력 제품군에 적용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도 올해 안에 10나노급 6세대 D램 양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아직 공식적인 발표는 없지만, 연내 양산을 공언한 만큼 개발이 막바지 단계에 이르렀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김형민 기자 [email protecte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