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의 인생 후반전] ‘韓 유도의 얼굴’ 전기영 용인대 교수… “저는 여전히, 국가대표입니다”

[레전드의 인생 후반전] ‘韓 유도의 얼굴’ 전기영 용인대 교수… “저는 여전히, 국가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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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영 용인대 유도경기지도학과 교수가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와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스포츠월드 김용학 기자

‘유능제강(柔能制剛)’

‘부드러운 것이 강하고 단단한 것을 능히 이긴다’는 유도의 기본 원리와 이념을 품은 사자성어다.
유도가 얼핏 보기에 강력한 힘이 필요해 보이는 투기(鬪技) 종목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강력한 힘의 소유자도 상대의 유연한 몸동작 한 번에 매트에 내리 꽂아질 수 있는 게 유도다.

1990년대 한국 유도의 아이콘, 전기영 용인대 유도경기지도학과 교수는 바로 그 부드러움의 미학을 누구보다 잘 보여줬던 주인공이다.
상징과도 같은 물 흐르는 업어치기와 불같은 승부사 기질을 섞어 올림픽 금메달, 세계선수권 3연패 등 굵직한 발자국을 찍었다.
짧았던 현역 시절이지만 누구보다 찬란하게 타올랐다.
인생 제2막의 한복판에 서있는 지금도 변함없이 자기 자리에서 묵묵하게 빛을 뿜어낸다.

◆유도 천재

소년 전기영은 정갈한 유도복의 기품에 반해 유도에 발을 들였다.
이유 있는 끌림이었다.
듬직한 체격, 기술 체득력, 타고난 유연성 등 필요한 능력치를 다 갖춘 ‘유도 천재’였다.
청석고 시절 전국대회 6관왕으로 판을 들썩일 때부터 존재감은 심상치 않았다.

전 교수는 “원체 내 몸이 부드러웠다.
유도가 애초에 ‘부드러울 유(柔)’ 자를 쓰지 않나. 그 덕에 각도가 없는 상황에서도 곧잘 기술을 구사할 수 있었다”며 “상대가 전혀 당해보지 않았던 방식으로 지니까 사람들이 보기엔 내가 정말 쉽게 유도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은 게 아닌가 싶다”고 웃었다.

타고난 재능에게 한국은 좁았다.
스무 살에 나선 1993년 캐나다 해밀턴 세계선수권 78㎏급에서 무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요시다 히데히코를 꺾고 트로피를 들었다.
체급을 86㎏로 올린 1995년에도 문제는 없었다.
일본 지바 세계선수권과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마저 제패했다.
1997년 파리 세계선수권을 또 금빛으로 물들여 세계선수권 3연패도 쌓았다.
파죽지세, 적수가 없는 청년 전기영이었다.

전기영 용인대 유도경기지도학과 교수가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와 인터뷰를 나누고 있다.
사진=스포츠월드 김용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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