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논란에서 촉발한 의료대란이 8개월째 이어지면서 편의점 안전상비의약품 품목 수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병원과 약국이 문을 닫는 심야기간과 휴일에 의약품 소비자인 국민에게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라는 것이다.
29일 편의점 업계에 따르면 편의점 안전상비의약품 품목 확대 논의는 2018년 이후 6년간 한 차례로 이뤄지지 않고있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 관계자는 "의료대란이 현실화된 지금은 안전상비의약품 품목 확대가 다시 논의돼야 할 시점"이라면서 "보건복지부는 2018년 논의 이후 6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복지부동한 상태"라고 밝혔다.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제도는 2012년 11월 심야·공휴일에 국민의 의약품 구입 불편 해소를 위해 도입됐다. 이에 따라 약국 외 24시간 연중무휴 점포에 한해 의약품 판매가 허용됐다. 편의점의 경우는 약사법 개정을 시점으로 감기·해열·진통제 7개, 소화제 4개, 소염제 2개 등 총 13개 품목에 대해 판매가 시작됐다.
업계에서는 그동안 약사법에서 정하는 수만큼 안전상비의약품의 품목 확대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현행 약사법은 20개 품목 이내 범위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취급 품목이 13개로 묶여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현재는 한국얀센의 국내 생산시설 철수 영향으로 타이레놀 2종 생산이 중단되면서 취급 품목 수가 11개로 줄었다.
업계 관계자는 "편의점에서 안전상비의약품 매출 비중은 0.3% 수준이지만, 가벼운 질병에 대한 시간적·경제적 소비자 손실을 최소화한다는 점에서 공적 성격이 강하다"며" 경질환자나 저소득층의 병·의원과 약국 이용 가격 인하 등 의료비 절감을 위해서라도 품목 확대는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안전상비의약품 품목 확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17년 3월부터 2018년 8월까지 6차례에 걸쳐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에서 품목조정 방안이 논의됐지만, 품목 점검과 재조정 결론을 내지 못했다. 지난해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 구성 결정이 났지만, 아직 구성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대한약사회 측이 의야품 오남용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응급실에 가야 할 환자가 대신 약을 먹고 상태가 더 악화될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약사회는 과거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 회의가 진행되던 2018년 당시도 품목 확대 저지를 위한 궐기대회를 여는 등 반대 의견 개진에 힘을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용법과 용량을 주의해 복용하면 부작용이 거의 없다는 2020년 의약품정책연구소 소비자 모니터링 결과 등을 근거로 약사회 측 주장을 반박한다. 의약품 오남용 우려에 대해서도 "오남용 소지가 적은 약품부터 단계적으로 확대하면 된다"며 맞서고 있다.
소비자도 편의점의 안전상비의약품 품목 확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소비자공익네트워크가 지난해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안전상비의약품 품목 확대에 대한 소비자 인식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편의점 안전상비약 구입 경험이 있는 응답자 62.1%가 '품목 수가 부족해 확대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국민 다수가 편의점 안전상비의약품 품목 수를 확대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며 "재산제, 지사세, 화상연고 등 안전성이 높은 소비자 요구 품목 확대가 시급하고 생산 중단된 품목에 대한 대체 지정도 요구된다"고 말했다.
조성필 기자 [email protecte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