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철강사 티센크루프는 지난 3월 뒤스브루크에 약 30억유로(약 4조4000억원)를 들여 직접환원철(DRI) 생산을 위한 실증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투자비의 3분의 2에 달하는 20억유로는 독일 연방정부와 티센크루프 본사가 있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가 지원한다. 직접환원철이란 석탄을 이용해 쇳물을 만드는 기존 고로 방식 대신 수소를 이용하는 제철 기술이다. 이 공장은 2027년에 가동을 시작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최근 독일 일간 한델스블라트는 이 회사 내부 문건을 이용해 티센크루프가 재정적인 어려움을 이유로 이 계획을 재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해당 기업은 이 보도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에도 불구하고 철강사들이 탈탄소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철강산업의 탈탄소는 2050년 탄소중립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제조 기반이 강한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국내 기후 관련 비영리단체(NGO)인 기후솔루션에 따르면 국내 철강산업 탄소 배출량은 산업 부문 배출량의 40%에 달한다. 우리나라 전체 탄소 배출량의 15%는 철강 부문이 차지하고 있다. 포스코 한 개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만 10%다.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미국-유럽연합(EU) 간 글로벌지속가능철강협정 등 규제도 강화되고 있다.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고 국내 철강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유지를 위해서 철강산업의 탈탄소화가 필수 과제가 된 것이다.
유동환원로 선택한 포스코, 유럽은 샤프트환원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그린 철강은 환원제로 기존 석탄 대신 수소를 사용하는 수소환원제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현재 많이 쓰고 있는 용광로(고로)-전기로 구조가 환원로-전기로로 바뀐 형태다. 아르셀로미탈, 사브, 잘츠기터 등 유럽 철강 기업들과 일본제철은 샤프트(Shaft)환원로를 이용해 직접환원철을 생산하는 데 비해 국내 포스코는 고유의 유동환원로 기술을 통해 탄소 저감을 추진하고 있다.
철(Fe)은 불안정한 물질이기 때문에 자연 상태에서는 철 원자 2개와 산소 원자 3개가 결합한 산화철(Fe2O3) 형태로 존재한다. 여기에서 산소를 떼어내 순수 철로 만드는 것이 기본적인 철강 제조 공정이다. 산소를 떼어내는 과정을 환원이라고 하며, 이때 필요한 물질이 환원제다. 기존에는 석탄을 환원제로 사용했다.
전통적인 고로-전로 방식에서는 철광석과 석탄을 제철의 원료로 사용한다. 우선 가루 형태의 철광석(분철광)과 석탄이 각각 소결 공장(분철광석을 고온으로 가열해 괴 형태의 소결광으로 만드는 공장)과 코크스 공장(고온에서 휘발성 물질을 제거해 코크스 덩어리로 만드는 공장)으로 보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소결광과 코크스를 고로에 겹겹이 쌓은 뒤 아래에 있는 풍구에서 1200도의 뜨거운 공기를 불어넣어준다. 이때 코크스가 연소하면서 일산화탄소(CO)가 발생하고, 일산화탄소가 다시 철광석을 환원시켜 순수 철(Fe)과 이산화탄소(CO2)를 만든다. 고로 내부에서 발생하는 1500도 이상의 열은 철광석을 녹이는 용융 반응을 일으키며 용선(쇳물)을 만든다. 석탄은 환원제이면서 용융 반응의 원료 역할을 동시에 하는 셈이다. 고로 방식에서는 철 1t을 생산할 때 약 2t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분철광과 석탄 가루를 소결광과 코크스로 만드는 것은 고로 내 통기성을 좋게 해 환원 반응이 잘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다.
고로에서 만들어진 용선은 거대한 항아리 모양의 전로(BOF)로 옮겨진다. 전로에서는 용선에 순수한 산소(O2)를 불어 넣어 인, 황, 탄소 등 불순물을 제거하고 정제한 쇳물인 용강을 만든다.
석탄을 이용한 고로-전로 기반 공정은 전 세계 철강 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이 방식은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오랫동안 최적화돼 왔지만 온실가스인 탄소와 각종 환경오염 물질을 배출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따라 탄소와 오염 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공법에 대한 연구가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 기존의 고로에 사용하던 가루 형태의 철광석 대신 펠릿(Pellet)이나 환원철(HBI)을 사용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철광석을 일정한 크기의 구형(둥근 모양)으로 가공한 펠릿은 철 성분이 많고 환원 효율이 높아 탄소 배출이 적다. 환원철은 철광석에서 산소를 미리 제거한 원료이기 때문에 석탄의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
고로에 석탄 대신 천연가스(NG)를 사용해 탄소를 줄이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들은 일종의 징검다리 기술로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전혀 다른 공정이 필요하다.
유럽의 철강사들은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우선 샤프트환원로에서 천연가스를 연료이자 환원제로 사용하는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가공한 펠릿을 샤프트로에 넣은 뒤 열을 가하고 천연가스를 투입한다. 이때 천연가스가 일산화탄소와 수소로 변환돼 환원 반응을 일으켜 고체 상태의 환원철을 생산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환원철을 전기로로 옮겨 녹인 후 철강을 생산한다. 천연가스를 이용한 샤프트환원로-전기로 방식은 기존 고로-전로 방식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크게 감축할 수 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 샤프트환원로에 수소를 이용해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것이다. 환원로에서 펠릿과 고온의 수소 가스를 접촉시키면 수소가 철광석의 산소를 빼앗아 물(H2O)과 고체의 직접환원철이 만들어진다. 직접환원철은 다시 전기로로 보내 용융 과정을 거친다. 이때 수소는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그린 수소를 사용한다. 전기로 역시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면 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포스코는 이와 다른 방식의 유동환원로 방식을 발전시켰다. 유럽과 달리 철광석을 전량 수입해야 하는 우리나라는 펠릿을 구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분가루 형태의 철광석을 직접 이용하는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유럽 철강사들이 샤프트환원로 방식으로 전환할 경우 펠릿 품귀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유동환원로는 분철광을 환원로에 넣고 고온의 환원 가스를 하부에서 분사해 철광석을 공중에서 액체처럼 뒤섞으며 환원하는 방식이다. 포스코의 유동환원로 기술인 파이넥스(FINEX) 공법은 환원로에 분철광을 투입하고 일산화탄소 75%, 수소 25%를 사용해 환원하는 기술이다.
유동환원로에서 만들어진 가루 형태의 환원철은 용융로에 넣어 쇳물로 변환한 뒤 다시 전로에서 정제 과정을 거친다. 이때 환원제는 석탄을 넣은 용융로에서 발생한 일산화탄소를 유동환원로의 환원제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파이넥스 공법에서는 소결 공정 및 코크스 공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비용을 절감하고 탄소 배출도 줄일 수 있다.
파이넥스 공법에서 석탄을 없애고 100% 수소만을 환원제로 사용하는 것이 하이렉스(HyREX) 공법이다. 하이렉스에서는 유동로에서 수소로 환원한 환원철을 다시 전기로에 보내서 정제한다. 포스코는 2030년까지 하이렉스 기술 개발을 마치고 2050년까지 기존 설비를 하이렉스로 대체하겠다는 계획이다.
수소환원제철은 2050년 탄소중립으로 가기 위한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넘어야 할 숙제가 만만치 않다. 우선 수소환원제철의 경제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수소를 대량 생산해야 하며 가격도 현재보다 낮아져야 한다. 포스코는 하이렉스 상용 설비 1기당 연간 수소 17만t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현재 그린 수소의 생산 단가는 국가별로 ㎏당 5~10달러 수준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그린 수소 가격이 1달러 이하로 내려가야 수소환원제철의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수소환원제철은 전기로를 사용하기 때문에 막대한 전기가 필요하다. 2021년 기준 약 2.9기가와트(GW)의 전력을 사용했는데 수소환원제철로 전환하는 2050년에는 전력 수요가 4.6GW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력 확보 방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수소환원제철로의 전환은 요원해진다.
포스코의 경우 현재는 고로 등에서 발생하는 부생가스를 이용해 자체 발전을 해왔다. 필요한 전기의 15%만을 한국전력에서 구매했고 85%는 자가 발전을 통해 충족했다. 하지만 용융로를 수소환원제철로 전환할 경우 부생 가스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더이상 자가 발전을 할 수도 없다.
강희종 스페셜리스트 [email protecte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