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자여, 시동을 켜라!(Drivers, start your engine!)"
사회자의 구호에 트랙 안쪽에 기다리고 있던 차량 38대가 일제히 엔진을 켰다. 자기 머리 크기만한 방음헤드셋을 찬 어린아이부터 백발의 노구까지 경기장을 가득 채운 관중은 환호와 박수로 화답했다.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모터스피드웨이에서 열린 전미개조자동차경주대회, 이른바 나스카(NASCAR·National Association for Stock Car Auto Racing)는 그 자체로 모두가 즐기는 축제이자 미국인의 자동차 사랑을 엿볼 수 있는 현장이다.
스톡카, 즉 시판 차량을 개조해 참가하는 방식인데 대회 주최 측에서 제시한 일정한 규격을 따라야 한다. 정해진 기준에 맞춰 경주에 최적화한 형태로 제작하기에 시중 판매하는 모델과는 아주 다르다. 5800㏄ 고배기량 엔진에 후륜구동 방식으로 외관은 복합섬유 재질로 가볍게 만들었다. 앞뒤 조명이나 그릴 부분은 스티커로 흉내만 냈다. 운전자의 안전과 빠르게 달리는 데 온 역량을 쏟았다는 인상을 풍긴다. 일정한 규격을 지켜 만든 만큼, 제조사 기술력에 따라 순위가 나뉘는 포뮬러원(F1)과 달리 운전자의 역량이 결과를 좌우할 때가 많다.
경기 자체는 단순하다. 2.5㎞ 정도 원형 트랙 260바퀴를 먼저 돌면 된다. 예비주행을 포함해 총 659㎞를 가장 먼저 달리는 이가 승리하는 경기다. 처음 출발 후 페이스카를 따라 한두 바퀴 예열을 거친다. 이후 군집을 이룬 차량이 제 속도를 내기 시작하면 굉음을 내며 트랙을 달군다.
트랙에서 가까운 관중석에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잰 소음은 115㏈. 귀마개를 끼지 않으면 이내 먹먹해진다. 이날 경기를 마친 후 집계한 평균 속도는 시속 211㎞. 평소에도 시속 200㎞ 중후반 속도로 달리고 한창 속도 경쟁이 붙는 막바지 최고 속도로는 시속 288㎞를 찍었다고 한다.
단순히 가장 먼저 결승선을 끊는 순간을 즐기는 게 아니다. 경기가 시작하는 게 오후 3시인데 관중들은 아침 일찍부터 경기장을 찾아 참가 선수와 팀의 준비 상황을 같이 지켜보며 교류하는 시간을 갖는다. 경기장 인근에는 아예 대회를 치르기 며칠 전부터 차량 캠핑 트레일러 수백 대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경주대회를 중심으로 한 가족 단위 여가문화로 이미 오래전부터 자리 잡았다.
미국 전역에서는 연초부터 연말까지 38차례 경기가 열린다. 매 경기 400~500마일가량 주행한다. 긴 호흡을 갖고 경기가 열리는 터라, 각 팀과 드라이버를 응원하는 팬덤이 탄탄하다. 미국 내 인기는 미식축구 다음인 프로야구(MLB)와 맞먹을 정도라고 한다.
대회 참가 차량은 휘발유에 바이오에탄올 15%를 혼합한 연료 E15를 쓴다. 미국에서는 에탄올을 10% 혼합한 E10 혹은 E15를 일반 주유소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따로 첨가물을 넣지 않아도 옥탄가가 더 높아 고성능 차량을 운전하는 데 적합하다. 나스카에서는 E15 도입 후 지금껏 800만마일 이상 주행했는데 연료가 문제가 돼 경기에 차질을 빚은 일은 아직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이날 RCR팀 소속으로 3번 차량 드라이버로 참가한 오스틴 딜런은 "에탄올 혼합연료를 더 쓰는 쪽으로 가야 한다"며 "취약한 전력망을 감안하면 모든 면에서 전기차에 비해 더 낫다"고 말했다.
햄프턴=최대열 기자 [email protecte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