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모두 추석 연휴 전에 임금단체협약(임단협)을 매듭짓지 못했다. 4년 연속 ‘무분규’로 임단협 합의를 이끌어낸 기아 등 비교적 빠르게 ‘노조리스크’를 해결한 자동차업계와 비교된다. 국내 산업을 이끌어가는 쌍두마차인 전자와 자동차의 희비가 엇갈리는 모습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12일부터 4개 노조가 사측과 교섭에 나설 노조를 단일화하는 절차에 돌입했다. 이 절차는 2주간 이어진다. 삼성전자에는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 삼성전자노조동행(동행노조), 구미네트워크노조, 삼성그룹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DX노조) 등 4개 노조가 있다. 사무직노동조합이 우선순위상 ‘1노조’로 있었지만 지난달 전삼노에 흡수 통합되면서 노조 개수가 하나 줄었다. 전삼노가 대표 교섭권을 갖고 지난해 8월부터 지난달까지 1년간 사측과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하면서 다른 노조들도 교섭권을 요구할 수 있게 됐다. 4개 노조는 최근 사내 공고를 통해 모두 사측과 교섭에 나서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4개 노조가 모여 단일화를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는데, 시작부터 난항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앞선 전삼노 교섭 과정에 대해 일부 노조들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분위기가 차가워졌기 때문이다. 동행노조는 지난 7월26일 사내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전삼노의 총파업 행태를 비판했다. 동행노조는 "기대했던 대표 노동조합의 총파업을 통한 협상이 회사와의 첨예한 대립으로 더 이상 합리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 길로 들어서고 있다"며 "잘 보이지 않는 강성 노조의 힘은 앞으로 우리의 발목을 잡고 실망만 안겨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삼노는 지난달 중순 구미네트워크노조와의 협력을 통해 협상력을 키워보려 했지만, 구미네트워크노조도 이를 거부하면서 무산됐다. 이런 사정들로 사측과 교섭할 노조가 언제쯤 확정될지 불투명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늦어지면 사측과의 제대로 된 협상은 10월말이나 돼야 가능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삼성전자 노조 분위기를 "붕 뜬 상태"라고 표현했다.
SK하이닉스는 기술전임직(생산직)노조와의 임금 협상을 아직 마무리하지 못했다. 당초 회사는 이 노조와 올해 임금 인상률을 5.7%로 하고 의료비 지원 한도 확대 등의 내용을 담은 잠정합의안을 도출했지만 조합원 투표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조합원들은 이 합의안에 반대 144표, 찬성 60표를 던졌다. 특히 조합원들은 현행 3조2교대인 근무형태를 4조2교대로 변경해달라고 요구했지만 합의안에 포함되지 않은 점을 문제삼은 것으로 전해진다. SK하이닉스 내 생산직 노조는 이천과 청주로 나뉘고 두 곳이 ‘전임직 노조’라는 이름으로 매년 임단협에 나서고 있다.
다만 또 다른 노조인 ‘기술사무직 노조’는 추석 연휴 직전인 11일 최종 합의했다. SK하이닉스는 추후 전임직노조와 잠정합의안의 세부 내용에 대해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김형민 기자 [email protecte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