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엔터테인먼트 업체들은 공연장이 절실했다. CJ는 문화보국을 말했다. 경기도도 관광, 문화의 중심인 공연장을 유치하겠다는 열망을 숨기지 않았다. 선출직 경기지사 등 정치권도 경기 북부에 CJ라이브시티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그 후 10년 결국 K팝의 미래 중심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던 고양시 CJ라이브시티 작업은 실패 판정을 받았다.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
세계 최초 K팝 전용 아레나와 K콘텐츠 종합 체험단지 조성 계획으로 10년 가까이 세간의 이목을 끈 CJ라이브시티 사업이 지난 7월 공식 무산됐다. 공사가 중단된 고양시를 비롯해 사업 주체인 CJ그룹과 경기도는 사업부지 불법 폐기물 문제와 사업 의지 부족을 내세워 계약 해제 원인이 서로에게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CJ라이브시티는 2016년 경기도와 협약을 맺고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 약 10만평(6400㎡) 부지에 6만석 규모 K팝 전문 아레나와 스튜디오, 테마파크, 숙박 및 상업시설 등 콘텐츠 경험형 복합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10년간 20만개 일자리와 약 30조원의 생산 유발 효과가 예상되는 총사업비 약 2조원의 경기 북부 최대 개발 프로젝트이자 문화보국(文化報國)을 꿈꾸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숙원사업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해당 사업은 지난 7월 1일 경기도의 사업 협약 해지 발표로 무산됐다. 경기도는 이튿날 공공주도 공영개발 추진 계획을 밝혔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CJ의 전체 공정률은 약 3%에 불과했고 사업계획을 4차례나 변경했으며 지난해 10월에는 계약당사자인 경기도와 협의 없이 국토부의 '민관합동 건설투자사업 조정위원회'에 상업용지와 숙박용지의 계약 해제를 요구했다"며 "CJ라이브시티는 도민과의 약속을 어겼고 공사 주체로서 책임을 회피했다"고 주장했다.
‘K컬처밸리 복합개발’로 명명된 CJ라이브시티는 2016년 경기도 공모사업으로 착수 이후 국정농단 사태, 코로나19, 행정 절차 등으로 난관에 부딪혔다. 여기에 아레나 건축 허가 후 착공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022년 5월, 터파기 공사 진행 중 아레나 서측 구간에서 대량의 건설·산업 폐기물이 발견됐다. 폐기물은 아레나 공사장 인근 7만평(23만7401㎡) 구간에 걸쳐 약 3m 깊이까지 불법 매립돼 끌어내는 데만 50개월이 소요됐다.
CJ라이브시티 부지를 가로지르는 한류천의 오염도 사업 지연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10년여간 유인된 생활오·폐수와 방치된 쓰레기로 사실상 하수구 상태인 이곳을 경기도는 2011년 수변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을 세우고 약 270억여원을 들여 공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주변 환경과 맞지 않는 설계 오류로 현재는 악취가 나고 해충이 들끓는 4~5등급의 수질로 변질됐다.
경기도는 2017년 고양시와 협력해 한류천 개선을 공공사업으로 진행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아직 준공 일정도 잡지 못한 상태다. 이 협의를 끌어내는 데만 2년이 걸렸다. 산업 폐기물과 하천 오염으로 4년 2개월 동안 사전 작업에만 시간을 허비한 탓에 지난 6월 만료된 사업기간 동안 공정률은 17%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CJ 측의 설명이다.
여기에 한국전력공사가 CJ라이브시티 일대에 대용량 전력 공급이 어렵다고 통보하면서 사업은 최대 위기를 맞는다. 이후 한국전력이 신고양 변전소 설치를 추진하며 대안을 제시했지만, 변전소 완공과 전력 수급 가능 시점은 2029년 이후로 사업 추진의 발목을 잡았다.
CJ는 계속되는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해 말 국토교통부 민관 합동 PF 조정위원회에 중재를 신청하고, 지체상금 감면과 공사 기한 재조정을 골자로 한 조정안 수용 의사를 밝혔다. 조정위는 구체적으로 공사 지연으로 과거 누적된 지체상금은 CJ에 부과하되 불가항력적이었던 전력 공급 불가 통보 이후의 지체상금은 삭감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경기도는 이에 대해 검토 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경기도는 CJ만 지체상금을 면제할 경우 향후 특혜·배임 문제에 휘말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지난 8년간 CJ라이브시티 전체 사업 공정률이 3%(아레나는 17%)에 그친 것을 들어 사업 추진 의지가 없다고 판단, CJ에 계약 해제를 통보했다. 또한, 향후 사업은 경기도가 GH(경기주택도시공사)와 협력해 건설을 진행하고, 이후 운영은 국내외 엔터테인먼트사가 참여하는 공공개발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지역 주민의 거센 반발이 이어졌다. 경제적 파급효과와 지역사회 활성화를 위해 사업유치를 환영하고 지지했던 이들은 경기도와 고양시가 행정 문제로 반목만 일으키다 사업이 좌절됐다며 지난달 20일 차량 80여대를 동원해 공사 현장 앞에서 사업 재개 시위에 나섰다.
시위에 참여한 일산연합회 관계자는 "최근 내한공연을 진행한 미국 가수 칸예 웨스트가 만약 올해 6월 CJ라이브시티가 정상적으로 완공됐다면, 고양종합운동장이 아닌 아레나에서 더 멋진 공연을 펼치지 않았을까"라며 "CJ라이브시티 사업이 경기 남부에 비해 고양시의 낙후된 이미지와 베드타운의 오명을 벗어날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2조원에 가까운 막대한 재원 조달과 콘텐츠 수급을 공공개발로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건지,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고 했다.
CJ 측은 ‘K-컬처밸리 복합개발사업’ 기본협약에 따라 당초 경기도가 토지 공급 이전, 시설 건축에 적합한 상태, 즉 정상적인 토지를 조성하고 공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매년 토지 대부료를 납부하는 상황에서 소유자인 경기도가 해당 부지를 임대한 것은 계약 해제 사유에 해당될 수 있을 정도로 하자가 명백한 토지라는 것이다.
시공 외에 CJ는 국내 최초 음악 전문 대형 공연장인 아레나 개발 콘셉트를 수립하고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 AEG와의 협업을 성사시키는 등 라이브시티 사업을 위한 기획과 개발, 운영 준비를 차질 없이 진행해왔다. CJ는 AEG와 조인트벤처(JV) 설립을 진행하는 한편, 고양시 내 한국 사무소 개설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 8년간 사업에 투입한 비용은 7000억원이 넘는다고 CJ 측은 설명했다.
CJ 측은 "경기도는 도의회의 행정사무조사 진행에 따른 사업 지연, 사업계획 과정 중 계속된 인허가 승인 지체까지 당사 잘못이라고 한다"며 "경기도의 해제 통보 이후에도 아레나 공사 재개를 위해 경기도와 직간접 접촉을 통한 노력을 지속하며 사업 성공을 위한 노력과 의지를 누차 밝히고 있다"고 강조했다.
고양시민을 비롯한 도민 반발이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 김동연 지사가 사업 추진에 대한 입장을 밝히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지난달 도민 1만758명이 참여한 'CJ라이브시티 관련 상세한 소명, 재검토, 타임라인 제시 요청' 제목의 청원에 대한 답변에서 김 지사는 "택지개발 등 사업계획에 대한 변경 없이 신속하게 'K-컬처밸리' 사업을 추진하겠다“며 ”사업 추진 의지가 분명하다면 CJ 측과도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CJ는 지난 5일 경기도에 'K-컬처밸리 복합개발사업 기본협약 등 해제 통보의 건' 공문을 보내 도의 협약 해제 결정 수용을 통보했다고 9일 김성중 경기도 행정1부지사는 밝혔다.
CJ 측은 "협약무효 관련 소송진행 시 5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에서 사업 정상화를 위해 경기도와 적극적으로 협의하겠다"고 설명했다.
김희윤 기자 [email protecte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